The Wanderer

The Wanderer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이번에는 슈베르트, 베르크, 리스트, 위대한 세 작곡가들을 건반 위로 초대했다. 그 특유의 섬세함과 진솔함, 성숙함이 담긴 앨범에 그의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짙은 애정이 드러난다. 선곡의 의미와 트랙별 해석, 조성진이 직접 전했다. "이전에도 항상 여러 작곡가를 섞어서 앨범을 녹음해보고 싶었는데 콘셉트를 잡는 게 어렵더라고요. 사실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하는 것이 그 캐릭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면에서 더 쉬운 방법이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슈베르트-베르크-리스트는 세 명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작곡가이지만 이 작품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작품의 구조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떤 캐릭터나 성격 면에서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묶어서 녹음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베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작곡가에요. 옛날에 어떤 분이 하셨던 말을 인용하자면 '저의 머리는 베토벤을 좋아하고, 저의 가슴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베토벤을 존경하고 감탄하면서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데 슈베르트나 모차르트의 음악 같은 경우는 정말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인간적인 면모도 있는 느낌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슈베르트가 인간적이고 친밀한(intimate) 느낌이 있어요. '방랑자 환상곡' 같은 작품은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적인, 노래하는 부분이 많아서 잘 표현해야 되는데, 문제는 테크닉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듣는 사람에겐 어렵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테크닉보다 음악이 먼저, 서정적인 면이 먼저 들리게끔, 그렇게 준비해서 녹음했던 것 같아요." Schubert: Fantasy in C Major, Op. 15, D 760 "Wanderer"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은 본인이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너무 어려워서 못 치겠다는 말을 남긴 곡입니다. 2악장은 특히 가곡 '방랑자'에서 주제를 따와서 멜로디 라인이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2악장만 들으면 우울하고 뭔가 방랑자가 희망과 행복을 찾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 외의 악장을 보면, 특히 4악장 같은 경우 굉장히 자신 있는 청년의 느낌이 들고, 1악장은 2, 4악장의 중간이에요. 자신도 있으면서 중간 부분에는 굉장히 서정적이죠. 3악장은 3박자 왈츠 느낌이어서 옛날 비엔나 왈츠가 이랬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형식에 테크닉으로도 어렵고 악장마다 브레이크도 없어서 한 a악장으로 들리기도 하고, 그래서 진보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곡인 것 같아요."
 Berg: Piano Sonata Op. 1 "베르크의 소나타는 그의 작품 1번입니다. 베르크가 이 곡을 썼을 때가 이십 대 중반이에요. 제가 지금 만 스물다섯인데 이 곡을 대할 때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고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이 곡 또한 슈베르트나 리스트 소나타처럼 형식은 갖고 있되 자유롭게 풀어낸 작품이고요, 무조 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B단조라는 조성이 있는 음악입니다. 이 세 곡의 공통점이 또 많지 않은 모티브를 사용해서 예술로 만들어낸 게 특징인데 예를 들면 슈베르트 '방랑자'가 1악장에서 첫 번째 리듬을 가지고 끝까지 사용하거든요. 베르크도 마찬가지로 리듬을 변형시키거나 조그마한 모티브 몇 개를 가지고 굉장한 작품을 만드는 힘과 재능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베르크 소나타는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곡 자체는 미스터리하기도 하고, 가끔은 로맨틱하기도 하고, 중간 부분은 굉장히 고요한 느낌이 들고 다성부적(폴리포닉)이어서 어떻게 보면 여러 작곡가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바흐를, 어떨 때는 바그너를요. 그래서 쇤베르크의 제자임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그와는 다른 베르크의 개성이 담긴 곡이라고 생각해요."
 Listz: Piano Sonata B Minor, S.178 "리스트 소나타는 30여 분짜리 대곡으로 2011년도에 처음으로 연주했었는데 9년 전 연주할 때와 지금 연주할 때가 느낌이 다릅니다. 당시 처음으로 이렇게 긴 곡을 연주해봤던 것 같아요. 그땐, 전람회의 그림도 있긴 했지만, 리스트 소나타가 좀 더 대곡으로 느껴졌고 뭔가 신나서 연주했던 것 같아요. 곡의 캐릭터도 화려하게 느껴졌고요. 지금은 클래식 피아노 곡 중에서 아마 가장 깊이 있는 곡 중 하나로 굉장히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스트가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괴테의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그런 부분도 있고 단순히 누군가의 하루 일과 같은 게 아니라 좀 더 깊은, 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한 곡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리스트 본인이 굉장히 비르투오조적인 피아니스트였고 화려한 곡도 많이 썼는데 이 소나타는 조용하게 끝나거든요. 저는 그래서 이 곡의 조용히 끝나는 뒷부분을 연주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항상 인생을 떠올리게 되고, 제가 아직 스물다섯 살 밖에 안됐지만, 드라마틱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조성진은 이렇게 전했다. "올해 쇼팽 콩쿠르가 열려서 기쁜 점은 앞으로 인터뷰할 때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질문은 안 나올 거라는 거예요. 다음 우승자가 또 나오니까요. 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이 배우고, 경험도 많이 쌓이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이 삶의 방식에도 익숙해진 느낌이에요. 여행도 많이 하면서 연주하는 삶이 처음보다 익숙해져서 노하우가 생겼달까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도 더 터득한 것 같고 쉴 수 있을 때도 더 잘 쉴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의 5년간은 지금처럼 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스스로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연주하거나 연습하는 게 일한다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제가 어렸을 때 꿈꿔 왔던 카네기 홀이나 베를린 필과의 연주 등은 해볼 수 있어서 더 이상 딱히 그런 꿈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외엔 앞으로 결정을 내릴게 많을 텐데 제 직감을 믿고 그때마다 현명하게 잘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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